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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s

Salon d'art GALLERY

PARK MIJIN
작은 존재가 선물한 새로운 일상

“‘나’를 어떠한 틀 속에 규정짓는 것이 아닌 ‘나’의 마음먹기에 따라 변화되고 그 변화가 또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생성될 수 있다.” - 작업노트
‘나는 누구인가?’ 박미진의 작업은 존재에 관한 물음이 그 중심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이 물음을 던지며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 존재론적 질문을 탐색하며 박미진은, 존재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 아름다운 여인으로 답하기도 하고, 꽃이나 나비, 길상 등의 소재와 결합해 존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해답을 찾기도 했다. 이러한 탐색 속에서 <illusion> 연작과 <Magic moment> 연작, <Awakening> 연작 등의 작품이 나왔다. 그의 작업은 존재론이라는 주제만큼이나 그것을 그리는 방식 또한 어렵다. 부드러운 톤과 밝은 이미지만 떠올리며 자칫 작업이 쉽게 완성될 것이라 오해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색층을 100여 번 쌓으며 그리는 ‘중채법’으로 완성하는 그의 작업은 인고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작업이다. 작가는 거듭 채색하는 과정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홀로 수십 번 되뇌며, 자신의 내면을 그림에 투영한다. 그래서 박미진의 작업은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 너머에 그 의미가 도달해 있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상업적 가치로 재단하고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탐미주의로 규정하는 것에 자주 상처받았다. 고통스럽고 힘든 현실에서 자아를 찾는 물음을 되뇌며 수행하는 마음으로 작업하면서, 내면이 조금씩 치유되어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오게 된 것인데, 치열한 현실을 이겨내는 한 방법이 이러한 작업인 것인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고 쉽게 판단하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을 경험하면서 작업에 관한 고민이 깊어졌다. 미에 대한 추구는 예술의 근간임에도 그것 자체를 사회에 대한 어떠한 외침도 없는 것처럼 단정 짓는 모습은 그를 아프게 했다. 지금껏 박미진의 작업은 외형(外形)을 묘사하여 인격과 내면까지 보여주려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표현법이었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개인의 존재론적 심연에까지 닿아 그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작업이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사회 속의 개인의 모습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내면에 지닌 아름다움의 외침을 시각화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작가의 노력을 프로파간다일 뿐인 비판적 메시지가 없다고 무시하거나 낮게 보는 상황과 마주하면서 그는 한동안 작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 것은 일상의 작은 존재, 연약한 존재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이러한 시선의 변화는 영화에 나온 대사에서 촉발됐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 야생의 꽃들을 경이감을 품고 바라보고, 근처에서 낯선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나뭇잎들을 흔드는 것도 즐겼다.”(<더 기버: 기억전달자> 중에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유의 정원>과 <P.Plant_1제곱미터>라는 작품이 나오게 됐다. “내가 바라보는 나만의 작은 세상들, 내 시선이 머무는 것들, 그런 것들에 주목하면서 … 저를 환기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그게 작업으로 이어지니까, 제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아요.”(작가 인터뷰) 이제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흔한 풀꽃들을 채집하여 그리고 있다. “매일이 같은 듯 보이지만 그 매일의 다른 마주침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의 초상처럼 다가왔다. 조금 더 자세히 보려고 노력하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일상을 마주하게 되었고…”(작업노트) 박미진이 이전에 이상화된 인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이자 우리의 내면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이제는 매일 일상에서 마주치는 풀꽃과 식물들을 통해 일상을 살아가는 자신의 내면, 우리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갑작스럽게 생긴 건 아니다. 작가는 2015년부터 식물과 나비만 등장하는 작은 소품을 그리곤 했다. 이미 박미진은 작은 존재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유의 정원>과 그 변주인 <P.Plant_1제곱미터>는 형식적으로 크게 바뀌었다. 작가는 기성품인 24cm의 작은 원형 수틀에 비단을 씌워 그 위에 풀꽃과 식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언제나 휴대할 수 있는 크기의 기성품을 사용함으로써 어디서나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작업 방식을 바꿨고, 비단에 채색함으로써 감상자가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변하게 했다. 특히 반투명한 비단에 오롯이 식물만 채색하고 여백은 빛을 투과하게 놔둠으로써 식물의 입체감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 앞뒤를 모두 볼 수 있게 설치함으로써 한 작품에서 두 가지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게 했다.
박미진의 작은 존재에 관한 관심은 연약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가는 최근 기억을 환기시키는 매개체인 파랑새를 기억의 상징으로 두고, 환기된 어린 시절과 작고 연약한 존재를 유기적으로 연결한 <사유의 정원에 파랑새를 보다> 연작으로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안진국(미술비평)